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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의 철학 에세이]
고통과 삶의 의미
고통은 삶의 의미 묻는 실마리
작성 : 2008-12-18 오후 6:08:26 / 수정 : 2008-12-18 오후 7:46:49
전북일보(desk@jjan.kr)
우리는 때로 인생에 힘들어한다. IMF나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건처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가정경제가 힘들어지기도 하고, 어떤 우발적인 사건으로 인해 삶의 시련이 다가오기도 한다. 고통과 시련은 개인적인 차원이나 사회적 혹은 경제적 정치적 차원에서 다양한 형태로 밀어닥친다. 이러한 고통과 시련을 경험하며 우리는 삶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도피하기도 하고 분노 때문에 무력감에 빠지고 좌절하기도 한다.
고통과 시련은 인간의 삶의 그 어디에나 숨어있는 복병이다. 행복과 평안이 있는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삶의 언저리에 숨어있던 시련이 문을 두드리곤 한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듯이, 행복과 고통도 실상 삶의 두 얼굴이다. 운명과 죽음이 삶의 일부분이듯, 고통과 시련도 우리가 거쳐야할 삶의 과정이다. 이를 통해 삶은 성숙되고 다른 의미지평으로 도약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될 때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해 강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며, 그 누구도 내 시련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될 때 그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된다.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이자 철학자이며 아우슈비츠 수용소생활을 몸소 겪은 프랑클(Viktor E. Frankl)박사는 삶과 죽음이 매일 교차하는 그 극한 상황에서도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를 찾은 사람은 그 어떤 육체적 강건함을 갖춘 사람보다 더욱 강하게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그는 “고통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도 알 수 있다”는 니체의 말을 좌표로 삼으며 수용소에 있던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왔다.
고통과 시련이 있기에 삶에서 내가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삶이 내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을 수 있고 나는 삶이 내게 던지는 물음에 응대할 수 있다. 우리는 매일 내가 원하는 삶을 이루기 위해 욕망과 당위적 요구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고통과 시련이 있는 순간 삶이 내게 던지는 물음 앞에 서게 되고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게 된다. 삶이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에 매 순간 진실하게 서게 될 때 우리는 자신의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게 된다.
고통은 프랑스 철학자인 레비나스가 말하고 있듯이 우리가 자신의 고독을 실현하는 사건이 될 수 있으며, 자신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얼마나 강한지, 자신이 누구인지를 체험하는 사건일 수 있다. 고통이 삶의 의미를 묻는 실마리가 될 때, 이는 회피하고 싶은 괴로운 실존의 사건이 아니라 미래를 꿈꾸며 삶을 숙성시키는 의미의 발효사건이 될 수 있다. 좌절과 체념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묻는 근원적인 사건으로 체험될 때 고통은 삶을 성숙시키는 귀중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정현(원광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