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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책]
본디 사람은 나누기 위해 ‘경쟁’ 했다
‘증여론’ 마르셀 모스 – 황설중(원광대 인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작성 : 2008-07-17 오후 7:30:50 / 수정 : 2008-07-17 오후 7:49:21
전북일보(desk@jjan.kr)
마르셀 모스는 ‘증여론’ 에서 본래 인간들은 다른사람에게 증여하기 위해 경쟁을 하는 존재였음을 역사적으로 일깨우고 있다.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단어는 경쟁일 것이다. 이 시대의 성공이란 다른 국가, 다른 민족, 다른 사람과 경쟁에서 이기는 일에 다름 아니다. 경쟁 상대는 전지구화로 확산되었는데, 우리나라의 사과 농부는 일면식도 없는 미국 캘리포니아 사과 농부와 진검 승부를 벌여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말 그대로 무한 경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막대한 재산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그들의 성공 신화는 모두가 뒤좇아야 삶의 본보기로 널리 홍보된다. 사람들은 성공하고 이윤을 축적하고 남보다 더 잘 살기 위해서 밤낮없이 뛰어다닌다. 때때로 우리는 지쳐서 자문하곤 한다. “경쟁하지 않고, 모두가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르셀 모스는 『증여론』에서 이런 바람이 단지 유토피아적인 상상이 아니라, (놀랍게도) 실제 우리 인류가 오랜 동안 영위해 왔던 삶의 양식이었음을 알려 주고 있다. 1925년에 발표한 이 기념비적인 인류학 논문에서 그는 아메리카 북서부 해안에 거주하는 인디언들의 포틀래치(Potlach)를 자세히 분석하고 있는데, 포틀래치란 인디언들이 관혼상제 등과 같은 통과 의례뿐만 아니라 후계자를 계승하거나, 새 집을 짓거나, 공적을 기리거나, 명예와 위엄을 찾기 위해 여는 공적인 의례 행사를 말한다. 모스가 전해 주는 포틀래치의 본질은 전혀 아낌없이 부를 주는 데에 있다. 손님을 초대한 주인은 손님에게 아낌없이 음식과 예물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많이 베풀수록 주인의 명예와 위세는 높아진다. 현재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자본주의적 삶에 물들지 않았던 인디언들은, 모스의 표현을 빌면, “누가 가장 부자이며 또 가장 미친 듯이 씀씀이가 헤픈 자인가를 앞 다투어 경쟁”했던 것이다.
포틀레치에서의 경쟁은 자기 이득을 관철하고, 승리하고, 재물을 모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재물을 나눠주고, 함께 소비하고 그럼으로써 축제를 벌이려고 하는 그런 야단법석이다. 우리도 자본주의의 경쟁 사회에 들어서기 전에는 관혼상제의 의식에서 모두가 소란을 떨며 음식을 먹고 떠들고 하지 않았던가? 어떤 면에서는 우리도 한때는 “어디에서나 주려고 안달했던” 인디언이었다. 인디언들이 재산을 모으는 이유는 오로지 그 재산을 남김없이 고귀하게 지출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체면이고 염치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옆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이웃이 있는데도 혼자 기름진 음식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사람을 그들은 삶에 대한 배반자라고 간주하였다.
모스는 본래 인간은 타산적인 경제 동물이 아니었음을 역설한다. 경쟁의 승리와 이익만을 눈앞에 두는 현대인들에게 『증여론』은 우리들 인간이 체면을 차릴 줄 알며, 악착같이 모으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에게 증여하기 위해 경쟁을 하며, 모두가 동참하는 대동제(大同祭)를 벌일 수 있는 존재였음을 역사적으로 일깨우고 있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소수이고 대부분은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최후의 일인(一人)만이 살아남는 무술시합과도 같다. 이것이 무한 경쟁 사회에서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즐거운 축제가 거행될 수 없는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증여론』은 도대체 “우리가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 경쟁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요구하는 동시에 우리들 선조들의 삶을 복원할 것을 촉구한다.
/본지 서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