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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교수의 철학 에세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세계는 감각으로 느끼는 물질과 정신세계 직조물
작성 : 2008-07-24 오후 6:55:24 / 수정 : 2008-07-24 오후 7:02:16
전북일보(desk@jjan.kr)
우리는 매일 다른 사람을 만나며 물질적인 세계와 접촉하고 또 자기 자신과 내적으로 대화하며 살아간다. 아침에 눈뜨면 우리는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고, 옷이나 책, 자동차 등 일상생활용품을 사용하며 살아간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 자신과 대화하며 스스로 질책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자부심의 상을 주기도 하는 등 자신과 내적으로 만난다. 사람과 환경과 자신이 바로 내가 만나는 세계 전체인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이러한 세계는 육체나 물건, 돈과 같이 눈에 보이는 세계도 있고, 사랑이나 정의, 마음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도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메를로-퐁티(M. Merleau-Ponty)가 말하고 있듯이 세계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직조물인 것이다. 세계에는 눈에 보이는 것, 감각으로 촉지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마음이나 사랑, 의미와 가치와 같이 감각의 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것도 있다.
육체의 눈에 보이고 감각으로 만져지는 세계가 물질 및 그 현상과 연관된 것이라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의미와 해석을 기다리는 정신적 세계이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작품이 눈에 보이는 경제적 가치를 지닌 물건이라면, 그 작품에 담겨져 있는 예술가의 정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심미적 가치를 지닌 것이다. 촛불이 눈에 보이는 물리적 사태라면, 촛불의 의미는 해석을 필요로 하는 의미의 세계이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은 언어로 설명될 수 있는 응고된 물리적 사건이지만, 아픈 마음이 담겨진 사건은 해석을 필요로 하는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는 사건이다. 마음과 정신,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와 의미는 육체의 눈이 아니라 정신의 눈으로 접근해야 이해될 수 있다.
세계는 눈에 보이는 세계와 우리의 해석을 기다리는 열린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 육체의 눈으로 사는 사람은 물질적 세계만을 보지만, 정신의 눈으로 보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세계로 들어가 새로운 삶의 의미를 건져낸다. 전자가 표피적 세계에 집착한다면, 후자는 사람들의 관계 속에 돌아다니는 보이지 않는 삶의 이치와 의미를 읽어낸다.
메를로-퐁티는 참된 철학이란 세계를 보는 것을 터득하는 것이며, 이 애매모호한 세계의 몸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신의 눈, 영혼의 눈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할 때 비로소 인간다운 의미의 세계가 우리에게 드러난다. 우리가 세상을 보다 의미 있게 살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몸을 바라보고 만날 수 있는 정신의 훈련이 필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삶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드는 세계는 분명 존재한다. 철학은 세계의 몸을 만지며 이 애매모호한 세계를 의미 있게 읽어낼 수 있게 한다.
/김정현(원광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