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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교수의 철학 에세이]
정신적 탄생과 영적인 인간
생명의 눈으로 세상 보며 사랑의 눈으로 삶을 이해
작성 : 2008-07-31 오후 8:02:53 / 수정 : 2008-07-31 오후 8:17:08
전북일보(desk@jjan.kr)
우리는 어머니를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나 삶을 살아간다.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지나 뜻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이 세상에 내던져져 자신의 삶을 오로지 살아간다. 실존철학자 하이데거(M. Heidegger)는 이러한 인간의 운명을 ‘세계내존재’라고 표현한다. 세상에 내던져져 자신의 삶을 살아가도록 되어있는 것이 바로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단지 이렇게 생물학적으로만 태어나 살아가는 것일까?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태어나 성장하면서 다시 한번 사회 속에서 태어나게 된다. 그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준 폴리티콘(Zoon Politikon)’, 즉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한다. 인간이란 도시 안에서, 즉 사회적 관계 안에서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익히며 자신의 삶을 조율하는 능력을 우리는 사회적 관계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에게 내려온 전통, 관습, 규범, 역사적 전승, 사회적 코드를 익히며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인간답게 성숙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또 한번의 어려운 출생과정을 겪어야만 한다. 기독교의 최고의 사상가인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참된 종교』에서 우리가 정신적으로 다시 한번 태어나야만 한다고 역설한다. 인간이 정해 놓은 사회적 규칙 속에서 살아가며 속되고 퇴락한 탐욕의 인간, 낡은 인간, 세속의 인간으로부터 새로운 인간, 내적인 인간, 하늘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영적으로 새로 태어나는 것을 그는 ‘하나님의 치료’, 또는 ‘종교적 치료’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신적 탄생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삶의 고통과 어려움을 통해 자신과 진실하게 대면하는 고독한 훈련 속에서 우리는 영적인 출산을 준비할 수 있다. 철학자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생명 자체는 그 자신이 겪는 고통을 통하여 자신의 앎을 중대시킨다”고 말한 바 있다. 진정한 삶의 이해는 고통을 통해 발생되며, 고통을 통해 인간은 더욱 성숙해 질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사회 안에서 배운 세속적인 가치를 탈(脫)가치화하고 진정으로 삶과 인간을 위해 보편적 인식의 차원으로 고양되어갈 때, 고통을 통해 삶의 넓이와 폭을 함께 지닌 독수리 같은 눈을 가질 수 있을 때 우리는 영적으로 성숙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영적인 인간은 생명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사랑의 눈으로 삶을 이해하고 그가 만나는 사람을 성장하게 만들고 성숙시킨다. 정신적으로 성숙할 때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진정한 의미를 읽고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생명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김정현(원광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