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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교수의 철학 에세이]
우리 학문하기와 주체적 글쓰기
비판적 문제의식 통해 새로운 텍스트 개발해야
작성 : 2008-10-16 오후 8:47:08 / 수정 : 2008-10-16 오후 8:50:16
전북일보(desk@jjan.kr)
우리는 오랫동안 외국이론을 받아들이면서 그 의미와 맥락을 알 수 없는 유령 같은 글쓰기로 학문을 해왔다. 근대적 교육이 일본이나 서양으로부터 이식됨으로써 학문의 서구지향적 식민성이나 탈맥락성을 내면화하는 과정을 밟아왔기에 우리 학문에 주체적 글쓰기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성을 강조하며 자연과학을 중시하고 물질적 부의 증진을 위해 노력했던 근대문명의 발달과정에서 소외되어 식민지라는 지울 수 없는 역사의 상처를 경험한 우리 현대사를 볼 때, 우리 지식인들이 매달렸던 외국이론에 대한 맹목적 숭배는 우리 지적 담론의 한계였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국내에서도 오직 서양학문만을 학문의 유일한 전범으로 여기며 동양학을 무시하는 독선적 태도를 지닌 이들이 없지 않았고, 동양사상만을 우리의 전통가치를 표현하는 유일한 자산이라고 믿는 외곬수의 정신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았다. 동서양의 이분법적 구분 위에 서양 혹은 동양의 사유방식만을 고집하는 이러한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우리의 사유와 글쓰기는 우리의 전통뿐만 아니라 지구촌 현실의 문제를 소화시켜 시의성 있게 표현하는 비판적 문제의식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사회의 문제뿐만 아니라 지구촌 시대의 문제의식을 담아내는 새로운 텍스트를 개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텍스트의 개발과 그 텍스트를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사유문법이나 글쓰기가 없다면, 그것은 곰팡이 나는 전통의 텍스트 속에 상투 쓰고 앉아 있는 학문에 다름이 아니다.
철학은 특히 지역주의나 인종주의를 극복하고 지구촌의 보편적 인간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독일의 사상가 칸트는 1796년 쓴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에서 “어떠한 국가도 다른 국가의 체제와 통치에 폭력적으로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자유로운 국가들의 연방체제에 기초한 국제법에 의해 국제연맹이 맺어져 세계평화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연맹 그리고 더 나아가 국제연합(UN)의 이념적 기초가 된 이러한 칸트 철학은 20세기에도 세계평화에 크게 기여했으며, 2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군사적 경제적 우월성을 담보로 일방적으로 이라크전쟁을 일으킨 미국의 행태를 비판하는 철학적 근거가 되고 있다.
개별성과 차이를 강조하는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놓칠 수 없는 철학의 과제 가운데 하나는 서양의 보편성이나 동양의 중심성이 아닌 ‘인류의 보편성의 확보’일 것이다. 동양철학이 세계정신사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지금’ 그리고 ‘여기에’ 있는 우리의 문제의식을 지구촌의 문제의식으로 확장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의 지적 담론은 동양과 서양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현실 혹은 현대문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유문법의 개발이나 주체적 글쓰기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김정현(원광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