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번호 : 1357882878159 ]
http://www.s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21933
[월요아침] 지방분권이 국민통합의 길이다 | ||||
|
||||
중앙집권이 강화될수록 양극화 문제가 심각해진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도 이러한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볼 수 있다. 양극화 현상을 말하는 경우에 흔히 경제적 양극화를 거론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재벌과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의 격차가 너무 벌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1%대 99%의 형식으로 이 문제를 파악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역의 양극화도 문제다. 우리나라의 동서격차가 심각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다. 지나친 수도권 집중은 우리나라를 도시국가의 형태로 이해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수도권과 지방은 인구의 격차, 경제의 격차, 사회적 서비스의 격차, 교육의 격차 등 문화 전반에 걸친 양극화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격차의 원인을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 가장 밑바닥에 있는 원인은 지나친 중앙집권화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 이후 현재까지 기나긴 중앙집권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흔히 말하는 속담도 그것을 반영하고 있다.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것이다. 지금도 이 속담은 우리 국민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지방은 죄인들의 유배지 이상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도 서울지역으로 발령받으면 영전, 지방으로 발령 받으면 좌천이라고 하지 않는가? 노무현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 계획을 이른바 관습헌법에 위배 된다는 해괴한 법논리로 위헌 판결을 내릴 만큼 중앙집권의 뿌리는 깊다. 다른 나라의 경우 봉건제도를 유지한 나라는 민주화 이후 상대적으로 지방 분권의 정치체제를 갖게 되었다. 유럽 국가들이 ‘수도’라는 단일 중심으로 국가를 경영하지 않는 전통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흔히 봉건시대, 봉건적 사고방식 등의 낱말을 사용하지만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 봉건체제를 유지한 적은 없다.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권력의 단일 중심체제가 경제, 사회, 문화의 전반에 걸친 양극화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한 걸음만 더 들어가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행정 부처의 일부를 세종시로 이전 한 것이 권력의 다극체제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전하는 정부 기관의 공무원과 그 가족들이 그 곳으로 이사하여 하나의 지역사회를 형성하지 않는 한 실질적 다극체제를 가져오기는 힘들 것이다.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방식이 지속되는 한 진정한 다극체제는 어렵다는 말이다. 실제로 필요한 것은 지방 분권이다. 진정한 지방 분권은 외교와 군사 부분을 제외한 자치권을 갖게 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학생회 자치 수준이라고 나는 여러 차례 말한바 있다. 지방자치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 8장은 117조와 118조의 두 조항뿐인데, 그것도 ‘지방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조세와 외자도입 등의 경제정책에서라도 지방정부에 권한이 주어진다면 각 지방정부가 좀 더 책임 있는 지역발전 정책을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 정책도 그렇다. 중앙 정부의 단일한 정책을 모든 교육기관에게 적용하고 한 줄로 줄 세우기 식 평가를 한다면 조건이 열악한 지방은 특화된 교육을 통해 삶의 수준을 높이는 정책을 구사할 수 없게 된다. 지방은 언제나 후진 지역, 지방 거주민은 2등 시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지역의 한 일간지가 새해를 맞이하여 여론 조사한 결과를 보았다. 10년 후 전라북도의 발전 정도를 묻는 질문에 대하여 지금보다 발전하지만 타시도에 비해 뒤떨어질 것이란 응답이 52.9%,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란 응답이 23.1%였다고 한다. 응답자의 76%가 비관적인 응답을 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도민의식이 뒤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지방자치의 제도적 결함 때문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분권 차원의 자치가 이루어진다면 전라북도가 맨손으로부터 일으켜 세우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이다. 1960년대 우리나라를 국민소득 60달러 수준에서 오늘날 2만 달러 수준으로 끌어 올렸듯이, 전라북도 차원에서 자율권을 행사한다면 그 방식으로 지역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말이다. 무엇을 할 수 있어야 희망을 갖지 않겠는가? 현재의 법은 지방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차원의 법이라고 할 수 있다. 새 정부는 대통합의 정치를 하겠다고 한다. 민생정치를 하겠다고도 한다. 대통합의 요체는 지방정부에게 권한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호남이 고향이기만한 서울 사람, 잘 봐주어 고등학교까지만 전북에서 나온 서울 사람을 장관에 기용한다고 해서 대통합이 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원광대 철학과 교수 |